오디세이아는 B.C. 850년 경 호메로스가 썼다고 알려진 헬라의 위대한 두 개의 대 서사시 중의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일리아드'이다. 
  
이 작품은 오디세우스(로마신화의 율리시스)가 10년 간의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난 후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 걸렸던 또 다른 10년 간 세월의 기록이다.

오디세우스는 많은 모험과 불운을 겪지만 마침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인 텔레마코스에게로 돌아온다. 

오디세우스가 떠나 있는 동안 사실은 많은 대적자들이 그의 아내인 페넬로페를 유혹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페넬로페에게 결혼해 달라고 공격적으로 구애한다.

페넬로페는 자신이 얼마든지 부재한 남편과의 결혼서약을 깨고, 왕이 되어 심지어 오디세우스를 죽일 새로운 남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오디세우가 없는 20년의 세월 동안 신실함을 지켰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선택할 수 없는 핑계를 만들어 내면서,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속이려고 애를 썼다.

가장 오랫동안 그녀가 사용했던 핑계거리는 오디세우의 아버지인 라에르테스(Laertes)의 수의를 짜고 있는데, 그것이 완성되어야만 남편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고 구애자들에게 말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매일, 페넬로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이미 완성한 수의의 일부분을 다시 푼다. 

이 페넬로페의 끈기(인내)는 결혼생활에서의 신실함을 말할 때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바울은 말한다.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됨에 대한 첫번째 징표로 '모든 참음'이라고.
능력도 아니고, 표적도 기사도 아니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고백인가!

그러기에 그는 사랑을 정의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첫번째는 '오래참음'이요, 사랑을 정의하는 마지막을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기를 원하는 수많은 제자후보생들에게 말한다.
"작은 것에 충성(신실)하라. 그러면 큰 것을 맡길 것이다."
"내가 다시 올 때 이 세상에서 믿음(신실)을 보겠느냐?"

세기 말적인 현상을 맞이하면서, 당연히 종말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디에 위치해 있든 간에 한 가지 변함이 없는 것은...
진리는 동일하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3000년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혹은 2000년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기록 속에서...
우리는 '신실함'이란 한 단어에 탄복을 자아낸다.